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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친필원고 보존사업 기부 인터뷰
등록일: 2019-04-03  |  조회수: 1,568

    연세인 여러분들에게 윤동주 시인은 어떤 의미를 가지시나요?  ‘진리’와 ‘자유’로 대변되는 연세정신은, 조국의 평화와 자유를 갈망하던 윤동주 시인의 문학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그리고 3.1운동이 100주년을 맞는 지금, 연세 학생사회는 이런 윤동주 시인을 더욱이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윤동주 시인이 수많은 사색을 하며 사상적 도야를 했던 연희전문대학, 이를 연세대학교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우리가 시간을 초월하여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다루게 될 우리 학교 학술정보원에서 근무하셨던 김영원 선생님의 기부는, 그런 점에서 귀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9년 2월, 연세대 중앙도서관 학술자료팀에서 근무하셨던 김영원 선생님께서 퇴직과 함께 우리 학교 대외협력처를 통해 1,000만원을 쾌척하셨습니다. 김영원 선생님께서는 이 기부금을‘윤동주 친필원고 보존사업’을 위해 써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연세대에서 수학도 하셨기에 김영원 선생님은 동문 선배님이기도 하십니다. 때문에 저는 이번 기부가 학교와 인연이 깊은 분께서 하셨다는 점에서도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김영원 선생님의 일신 상의 사정으로, 더 스피릿이 직접 기부자를 뵙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그 분의 직장 동료이기도 하신 학술자료운영팀의 김은수 팀장님 김명주 차장님을 인터뷰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부금이 사용되는 윤동주 친필원고 보존사업은 중앙도서관 학술자료운영팀에서 담당합니다. 때문에 이번 인터뷰를 통해 기부금이 앞으로 어떻게 사용되는지, 윤동주 친필원고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상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인터뷰 기사를 통해 학생사회가 앞으로 진행될 윤동주 친필원고 보존사업과 그를 담당하는 중앙도서관에 대해서도 더욱 큰 관심을 가지길 희망합니다.

 

1. 인터뷰에 앞서 김은수 팀장님과 김명주 차장님이 학술자료운영팀에서  어떤 일을 맡아 하시는 지, 또 국학자료실은 어떤 업무를 하는 공간인지 간략하게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은수 : 학술자료운영팀장 김은수입니다. 학술자료운영팀은 작년 9월 조직 개편을 거치면서 3개의 부서가 통합된 조직입니다. 학술자료운영팀의 주요 업무는 단행본을 구입하거나 서적을 기증받은 뒤, 서적의 내용을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차례로 단행본들의 내용을 분석한 뒤 데이터베이스에 등재하며, 각 열람실에 실제로 배치합니다. 또한 학술자료운영팀은 도서관을 출입하시는 분들의 이용 서비스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사무 및 경비업무 역시 학술자료운영팀의 주 업무입니다. 이번 윤동주 친필원고 보존사업을 담당하는 국학자료실 역시, 학술자료운영팀 산하의 조직입니다. 국학자료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해당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김명주 차장이 설명할 것입니다. 

김명주 : 학술자료운영팀 차장 김명주입니다. 저는 국학자료실에 있는 자료를 관리하고, 열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학자료실은 별도의 조직으로 있다가 이번 개편을 통해 학술자료운영팀에 통합되었습니다. 국학자료실은 10만종이 넘는 고서와, 개화기부터 한국전쟁 사이의 희귀자료 그리고 연세대학교 역사를 다룬 Y-COLLECTION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장목록으로 스페셜 컬렉션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번에 보존사업을 추진하게 되는 윤동주 친필 원고입니다. 

 

2. 김영원 선생님이 윤동주 친필원고 보존사업을 위해 뜻 깊은 기부금을 쾌척하셨습니다. 팀장님이 동료로 함께 해오셨던 만큼, 그 분의 간략한 바이오그래피를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은수 : 김영원 선생님은 1978년 연세대학교 고서학과(現 문헌정보학과)에 입학, 7년간의 수학 후 1985년 졸업하셨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입사하신 후 34년간 봉직하시고, 지난 2019년 2월 말에 정년 퇴임하셨습니다. 김영원 선생님은 당시 고서학 과목 중 서지학에 심취하셔서, 재학 중에 외부기관을 통해 한자를 따로 공부하시는 등 열정적으로 학문에 임하셨습니다. 1985년 김영원 선생님은 당시 은사이셨던 이재철 교수님의 권유로, 현 국학자료실의 전신인 고서계에서 근무를 시작하시게 됩니다. 그 뒤 줄곧 국학자료실에서 근무하시면서, 고서 및 신서 귀중본 일체의 보존과 정리 그리고 열람서비스를 담당하셨습니다. 또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정약전 시문을 발굴하여 학계에 소개하고, 삼국유사의 고증에 참여하는 등 전문직으로서의 사서의 위상을 높이셨습니다. 이런 기여에 2013년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3. 김영원 선생님께서 윤동주 시인의 친필원고를 학교에 유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이 원고를 유치한 그 정황과 김영원 선생님께서 어떤 이유로 기부를 해주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은수 : 김영원 선생님은 국학자료실이 고서 외에도 필사간 도서관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늘 말씀해 오셨습니다. 김영원 선생님께서 윤동주 친필원고의 유치를 추진하려 하신 것도 그러한 맥락이었습니다.

김영원 선생님은 윤동주 친필 원고를 유치하기 위해, 원고를 보관 중이시던 윤동주 시인의 장조카 윤인석 교수님을 방문하셨습니다. 당시 친필원고는 서류가방에 보관된 상태였는데, 오랜 세월로 인해 훼손된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에 김영원 선생님은 보존환경이 잘 갖춰진 연세대 도서관으로의 유치를 적극 권장하셨습니다.  당시 유족분들 또한 연세대에 친필원고를 기증할 마음이 어느 정도 있으셨는데, 김영원 선생님의 권유는 이러한 결단을 앞당겼으리라 짐작해봅니다.

 

4. 윤동주 친필 원고 보존을 위해 김영원 전 교직원 분께서 의미 있는 기부를 해주셨습니다. 학교에서 근무하셨던 분이 기부를 하신 것인만큼 더 의미가 크고 색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김은수 : 저는 이 기부가 김영원 선생님의 소명의식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료후배로서 지켜본 바, 못다한 책임을 완수하고 싶으셨던 김영원 선생님의 그 마음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김영원 선생님은 누구보다 윤동주 시인의 친필원고가 가지는 가치와 의미를 잘 아시는 분입니다. 이에 34년을 봉직하시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을, 퇴직하실 때라도 본인의 기부를 마중물 삼아 잘 마무리하고 싶으셨을 듯 합니다.

5. 이렇게 뜻있는 기부와 연세대의 투자를 통해 윤동주 친필 원고 보존사업이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기금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친필원고 보존사업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명주 : 일단 학교에서 이런 사업을 하려면 교내에서 일정한 절차를 밟아서 총장님으로부터 사업 품의를 받아야 합니다. 사업 품의를 받고 예산이 배정되면, 학교 홈페이지에 공고를 올려서 이 사업을 진행할 업체를 입찰합니다. 현재는 원고 보존처리 업체로부터 견적서를 받은 것까지 사업이 진행된 상태입니다.

앞으로의 윤동주 친필원고 보존사업은 전문가의 자문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될 것입니다. 사실 윤동주 친필원고는 작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면, 보관사업 등의 현상 변경을 할 때 문화재법에서 명시하는 절차에 따라야 합니다. 또한 구청 등의 공공기관에 신고를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명시된 절차들을 바탕으로 학교에서는 보존사업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6. 윤동주 시인의 원고를 보존하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닌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명주 : 윤동주 시인은 연세대학교를 대표하는 시인입니다. 연세대는 매년 백양로에 연세 정신을 빛낸 인물의 부조상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이 연례행사 중에서 가장 첫번째로 선정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윤동주 시인은 넓게 보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인입니다. 근대 항일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앞선 질문에서 윤동주 시인의 친필원고가 작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올해 2019년이 3.1 운동 100주년이기 때문입니다. 100주년을 준비하는 우리나라 정부가 그 일환으로, 항일 문학가들의 남아있는 유필 원고를 파악하여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 결과 윤동주 시인과 이육사 시인의 원고만이 유이하게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윤동주 친필원고는 항일 정신을 담은 문학작품으로서 대단히 희소한 자료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