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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할머니의 기부 이야기
등록일: 2019-06-04  |  조회수: 331

    지난 5월 30일, 우리 학교에는 한 할머니의 가슴 따듯해지는 온정이 전해졌다. 윤승원 할머니 (85세)가 사후 용인에 있는 시가 3억원 상당의 자택을 기부하기로 약정을 한 것이다. 맏아들 최병천씨와 서초구의 한 공증사무소로 동행한 윤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기부의 동기를 밝혔다.

윤승원 (左) 최병천 (右) 모자  

“평생을 아끼면서 자식들을 위해 살아 왔어요. 다행히 자식들도 모두 장성하고 손자, 증손자까지 보게 됐지요.” 할머니는 덤덤히 말을 이어나갔다. “자식들에게 해줄 건 다 해줬다 생각해요.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잘 펼칠 수 있는 연세대학교에 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맏아들 최병천씨 또한 윤 할머니의 의견에 동조했다. 어머니가 피땀 흘려 버신 돈이 저의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도, 꺾을 생각도 없습니다.”하며 웃었다.

윤승원 할머니는 새벽기도를 지속적으로 다니신다고 한다. 앞으로 연세대학교를 위한 든든한 기도 후원자가 되어 주시기로 했다. 아울러 장남 최병천씨는 주기적으로 세브란스병원에 갖서 찬양으로 봉사하고 있다. 모자가 연세대학교와 학적으로는 인연이 없지만 학교와 병원을 위한 그 누구보다도 특별한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부 약정을 마치고 손을 잡고 떠나는 모자의 뒷모습은 한없이 다정했다.   

 


 

윤승원 할머니 기부를 계기로 연세대학교와 크게 연관은 없지만 어렵게 모아 연세대학교 학생들에게 따듯한 온기를 불어넣어주신 할머니 세 분을 상기해봅니다.  

 

<파주 정 할머니의 기부 Story>

지난달 3일 오후 4시 30분 연세대 공학원에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가 들어섰다. 길거리에서 파는 허름한 꽃무늬 셔츠에 검정 치마 차림. 희끗희끗한 머리칼은 '뽀글이 파마'를 했고, 검게 그을린 얼굴에 검버섯이 몇 개 보였다.

동네 마실 나온 60대 시골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교직원 한 사람이 "무슨 일 때문에 오셨느냐"라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묵묵부답이었다. 한참 뒤 할머니가 조그맣게 말했다. "돈을 좀 내러 왔는데…. 1년 전에도 한 번 와서 돈을 조금 내놓은 적이 있어요." 교직원은 장학금 기부를 담당하는 대학본부 대외협력처로 급히 연락했다. 대외협력처에서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와 할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지난해 4월, 1억 원이 든 봉투를 남기고 총총히 사라진 바로 그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당시 정 할머니는 자신이 누구인지 끝내 밝히지 않았다.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는 질문에 '정 씨'라고만 했었다. 귀한 뜻을 어디에 쓰면 좋겠다는 기부 약정서도, 기부금을 건넸다는 영수증도 다 필요 없다며 서둘러 자리를 뜨는 할머니에게 대외 협력처 직원은 꼭 한 번 연락을 달라"라며 명함을 건넸었다. 정 할머니는 "기억해 줘서 고맙다"라며 미소 지었다. 그의 얼굴은 첫 만남 때보다 핼쑥했다. 잔주름도 부쩍 늘어 있었다. "따뜻한 녹차 한잔하시죠." 대외협력처 직원이 사무실 한쪽 작은방으로 할머니를 안내했다.

"안부 인사드리고 싶었지만 연락처가 없어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다 늙은 사람 안부는 물어 뭐 해요." 정 할머니가 팔목에 끼고 있던 검정 비닐봉지를 뒤적였다. 빳빳한 새 수표 몇 장이 나왔다. 1,000만 원짜리 2장, 500만 원짜리 1장, 100만 원짜리 5장. 모두 3,000만 원이었다. "이번에도 조금밖에 안 돼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써 주세요. 외부에는 알리지 말고…." 찻잔을 앞에 두고 10분을 함께 앉아 있었지만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거의 없었다. 왜 또 큰돈을 내놓게 됐는지, 연세대와의 인연을 묻는 대외협력처 직원에게 정 할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작년 연세대에 1억 원을 기부할 때 할머니는 "그동안 살던 곳이 재개발되면서 받은 토지보상금"이라며 "자식 셋은 대학 공부는커녕 밥도 제때 못 먹였지만 연세대 학생들이 이 돈으로 열심히 공부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이번에는 성함과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대외협력처 직원에게 "나는 이름이 없는 사람"이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로 집까지 모셔 드리겠다"라고 해도 정 할머니는 "괜찮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버스정류장까지만이라도 배웅하겠다"라고 대외협력처 직원이 나서자 "바쁠 텐데 무슨 배웅"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공학관에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 3000만 원을 쾌척하고 돌아가는 정 할머니는 허름한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파주행 버스에 오른 할머니는 "어여 들어가요"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김순전 할머니의 기부 Story>

지난달 14일 모시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김 순전(89) 할머니가 연세대 총장실 문을 두드렸다. 낯선 할머니의 방문에 의아해하는 교직원들에게 김 할머니는 조용한 목소리로 "기부하러 왔습니다. 내 이름을 딴 장학금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가 밝힌 기부금은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자택 등 4건의 부동산과 예금 등 100억 원에 달했다. 김 할머니는 "굶기를 밥 먹듯 하며 평생 열심히 살았지만 못 배운 게 끝내 한이 됐어요. 어려운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내가 공부하는 것과 똑같은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1923년 황해도 장연군 순택면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딸이 무슨 공부고, 학교냐'라는 집안 분위기 때문에 김 할머니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김 할머니는 "나도 잘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아무도 들어주질 않았어요. 아침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는 오빠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지요"라고 말했다.

6·25전쟁 통에 부모 형제와 헤어진 김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김 할머니 가족이 가진 건 덮고 잘 이불 한 채가 전부였다. 서울에 정착한 김 할머니는 장사를 하며 열심히 돈을 모았다. 김 할머니는 "버스비 아끼려고 후암동에서 동대문까지 매일 걸어 다녔어요. 말 그대로 배가 고프면 허리띠를 졸라맸지요"라고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김 할머니는 건물 한 채를 마련했다. 건물 임대만으로도 가족이 먹고살기엔 문제가 없었지만, 가족들이 '이제는 좀 여유를 부려도 되지 않느냐'라고 해도 김 할머니는 묵묵부답이었다. 김 할머니는 평생 속옷까지 기워 입을 만큼 검소했다. 주변 사람들은 "장 한 번 보러 가는 것도 깐깐하게 챙길 정도로 평생 '또순이'처럼 살았다"라고 전했다.

"우리 식구들 먹고 살 걱정은 이제 없습니다. 그저 어려운 아이들에 게 장학금을 줘서 훌륭한 일꾼으로 만들어 주세요."

60여 년 동안 악착같이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는데 주저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연세대는 김 할머니의 사후 장례를 주관하고, 할머니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만들 계획이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은 귀가 어두운 김 할머니를 위해 최근 보청기를 선물했다.

 

<유만순 할머니의 기부 Story>

늘 기부하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오늘 이렇게 소원을 풀어서 정말 기쁩니다.”

지난 6월 7일 총장실 부속 회의실에서 특별한 장학금 전달식이 열렸다. 85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정정한 모습으로 유만순 할머니가 김용학 총장에게 1억 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연세대학교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만순 할머니는 “내가 교회에 다니기도 하고 기부를 한다면 왠지 모르게 연세대학교에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유만순 할머니는 젊은 시절 죽을 쑤어먹고 썩은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어 먹을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3명의 자녀를 입양해 키웠다. 56세 즈음 남편과 사별한 뒤 자신의 유산을 학교 장학금으로 기부하라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제가 돈이 많아서 기부하는 게 아니에요. 저도 어려운 시절을 겪었듯 이 기부를 통해서 학생들이 돈 걱정 없이 학업에 충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부금 전달식에서 김용학 총장은 “어려운 결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며 “도움 주신 감사한 마음을 늘 생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유만순 할머니가 기부한 1억 원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